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인터뷰
詩가 만난 사람들
[시가만난사람들] 송덕출 울산광역시 여성단체협의회장
기사입력: 2015/09/24 [16:36]   울산여성뉴스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UWNEWS

“처음처럼 앞으로도, 아이들을 사랑하며 미래의 큰 나무로 키워가겠다”
어린 딸을 앞세운 엄마의 마음이 33년 세월을 보육과 봉사로...
올 해 어버이날에 어머니를 생각하며 쓴 사모곡과 가난 속에 딸을 잃어버린 엄마의 아픔을 읊은 자작시를 눈물로 낭독.

▲     © UWNEWS
가을은 사색의 계절, 서글픔과 회한이 몰려오는 가을이 오면 만감이 교차되고 한 번 쯤 살아온 삶을 반추해 보게 된다. 요즈음 여성단체 일로 가장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송덕출 여성단체협의회장을 만나본다.
평소 활기차고 똑 부러지는 일처리와 성격 탓으로 명랑한 면만을 봐오던 그가, 뜻밖에 예전부터 삶의 아픔을 겪으며 시를 쓰고 시집을 준비하고 있음을 알게 돼 놀라웠다.

“제 나이 70이 가까워오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고 젊은 시절 먼저 보낸 어린 딸 생각으로 눈물짓게 되더군요. 올 해 어버이날에 어머니를 생각하며 사모곡을 지은 시와 1975년 어린 딸을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며 지은 시가 있어 한번 읽어 보았습니다”
그에게서 엄마를 그리는 딸로서, 어린 딸을 앞세운 엄마로서의 애련한 비애가 물씬 전해져왔다. 눈물로 읽어준 그의 자작시 두 편을 들어보았다. 


 
우리어머니!

송덕출

오월의 꽃 향기가 온누리를 덮고
창밖에 새 소리 들리는데...
머지않아 내 나이 칠십이 가까워 오건만
새삼 그리워지는 얼굴은 우리 어머니!
9남매 막내딸로 태어나
결혼하기 전까지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져야 잠드는 막내딸
학창시절 수많은 딸의 친구 어머니가 되어주시고
내 친구 모두 안아주시고 맛있는 간식과 식사,
아낌없이 모두에게 엄마가 돼주신 우리 어머니!
지금도 친구들 만나면 어머니 이야기로 밤을 새운대요.
그런데 내 아이들에게 사랑한다 말을 많이 했지만
생전에 어머니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번 못해서 후회되고
어머니 무덤 앞에 꽃다발 놓고 맛있는 상을 차려
아무리 사랑한다 외쳐도 대답 없는 우리 어머니
어머니 은혜는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다지만
내 나이 칠십 가까우니
이제야 철들어 어머니 품이 사무치게 그립답니다.

 

 

가난 속에 딸을 잃어버린 엄마

송덕출 

 
하늘은 나날이 멀어만 가고
길가에 애기 코스모스가
엄마 찾는 듯 고개를 이리 저리 살피는 계절
5년 전 무능력한 엄마! 못난 엄마!
몸부림치면서 어린 딸을 먼 먼 곳으로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세상으로 보내버린
엄마가 꿈속에서나마
아니, 하얀 백지를 통해서나마
너하고 나하고 대화를 갖고 싶구나
사랑하는 아가야
목이 메이도록 불러본다.
방긋 웃는 너의 미소
엄지손가락 빨며 놀던 너의 모습
“엄마”라고 불러주던 너의 어여쁜 목소리
엄마는 몸부림 쳤다
타국에서 보내준 아빠의 월급봉투를 아껴쓰려고
아니 더욱 더 쓰지 않으려고
감기에 지친 너를 약만 먹게했지...
다섯 살인 너의 오빠 한 푼 두 푼 모아 둔 돼지저금통 가지고
병원에 갔었지
건강하게 엄마 품에 돌아올 줄 알았던 엄마는,
옆 병실에 입원중인 고아원 애들이 엄마를 찾는다기에
밤새워 달래며 안아주고 업어주다 너의 병실에 돌아오니
너는 가버리고 말았더구나
차디찬 너의 손을 잡고 울어본들 무슨 소용 있으랴?
아무리 외치고 울어도 영영 가버린 내 예쁜 딸
내 딸아 앞으로 너는 좋은 엄마 훌륭한 엄마 찾아 다시 태어나렴...
집으로 돌아오니 다섯 살인 너의 오빠는
저금통 내어주며 차비해서 동생 데려오라고 했지.
조그마한 아들 앞에 엄마는 고개를 숙였다.
그 후로 아빠 엄마도 모두 저금통장을 갖게 되었단다. (1980년)
---------------------------------------------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 깊이 묻어둔 아픔과 상흔이 있게 마련이지만, 진실로 9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어머니 품을 그리워한 딸의 사모와 어린 딸을 가슴에 묻어둔 어머니의 아픔에 그는 눈물지었다. 바로 그 눈물이 시가 되어 그를 위로하며, 예까지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오직 한 길 보육의 길을 걷게 하였나보다.

유난히 아이들을 친자식만큼이나 사랑으로 보살피며 33년 외 길 보육인으로 살아온 것 같아 마음이 숙연해진다. 1983년 남구 신정1동 유아원 원장으로 시작된 보육의 길은 1999년 1월 초대 울산시보육시설연합회 회장을 맡아 6년간 역임하고, 2010년 1월 아이코리아 울산지부 회장을 맡아 현재까지 역임하고 있다.

봉사정신과 세상일에 막힘이 없는 넓은 수용의 정신은 그로 하여금 1978년 1월부터 신정1동 새마을부녀회 회장을 5년간 맡아 봉사하도록 했다. 2007년 남구 여성단체협의회장을 거쳐 2014년부터 현재까지 울산광역시 여성단체협의회장으로 활발한 사회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처음처럼 앞으로도, 여력이 있는 한 아이들을 사랑하며 아이들과 함께하는 생활을 하면서 미래의 훌륭한 큰 나무들로 가꾸어 갈 것입니다”

그의 말처럼 보육과 사회봉사를 평생의 숙제로 살아온 그에게 울산시장상, 보건족지부장관상, 국회의원상, 양산대학장상, 국무총리상 등 다수의 상이 주어졌으며, 슬하에 두 아들이 장성해 사회복지와 보육을 담당하고 두 자부 또한 같은 분야의 일을 하며 전 가족이 보육과 봉사에 앞장서고 있다.

 


  • 도배방지 이미지

이동
메인사진
[임영석 시인의 금주의 '詩'] 눅눅한 습성 / 최명선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 썸네일
인기기사 목록